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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상품 제조기 김승범 아이디엔컴 대표-[이코노믹리뷰]- 2부




김 대표는 사실 미대 출신의 정통 ‘디자인맨’은 아니다. 대학에서도 자연과학부 환경공학과를 나와 디자인과는 거리가 다소 멀다.

그러나 디자인에 광고와 마케팅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가져왔고, 특히 디자인 컨설팅에 대해서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나머지 ‘탈 전공’을 외치며 디자인계에 몸을 실었다.

대학 졸업 후 ‘디자인포커스’라는 CI회사를 다닌 게 그 출발이다. 대학원에서도 광고마케팅을 전공하며 디자인 기업 운영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그는 디자인포커스를 3년쯤 다닌 후 현재의 아이디엔컴을 차리며 독립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현실은 뒤따라 주지 않았다. 시장에서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인데 처음 2~3년은 자신이 내놓은 디자인마다 속속 ‘참패’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그에게 ‘제갈공명’이 찾아온 것은 큰 행운이었다. 전 직장 상사였던 김흥기 이사가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김 이사는 현재 아이디엔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맡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나름 ‘스타 디렉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김 이사의 영입은 곧 아이디엔컴엔 순풍에 ‘돛’을 달아준 격이 됐다. 그때부터 중견·대기업들과의 계약이 이뤄졌고 브랜드 전략과 네이밍은 물론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 SI(Store Identity), 패키지디자인 등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있어서도 아이디엔컴의 명성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STX그룹의 CI 제작. 현재까지 10여년 동안 아이디엔컴은 이 그룹의 CI를 계속 관리해 오고 있다.

“예전에는 기업들의 CI에서 대문자가 많았어요. 이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이미지를 추구한 때문이죠.

그러나 저희는 2000년 들어 해외 유수 기업들이 CI를 소문자 형태로 변경하며 감성적 영역을 가미한 것에 착안해, STX그룹 CI를 고객에 친근하게 다가서자는 의미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문자로 과감히 바꿨습니다.”
STX그룹 CI, 남성맥주 스타우트 등 맞춤 디자인
CI 분야에서 STX그룹이 성공작으로 평가받자 제품 디자인에서도 아이디엔컴의 주가는 서서히 높아갔다. 하이트맥주의 ‘S맥주’가 대표작이다.

전 브랜드명인 ‘엑스필’이 여성을 겨냥한 ‘S맥주’로 재탄생한 것인데, S맥주는 2007~2009년 클럽시장 매출 1위는 물론, 한국모델협회 공식지정 맥주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상승세를 보여오고 있다.

‘카프리’ 등의 경쟁 맥주에 비해 노후화된 이미지가 많았던 ‘엑스필’을 하이트의 ‘미운 오리 새끼’에서 ‘효자’로 거듭나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니셜 ‘S’를 병의 전면에 배치해 S가 상징하는 Stylish, Something Special, S-line 등의 감성적 속성과 최초의 식이섬유 맥주라는 기능적 속성을 동시에 전달한 게 주효했다.

디자인 하나만 놓고 봤을 때도 S맥주의 디자인은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 국제포럼디자인이 주관하는 ‘iF 디자인 어워드 2009’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화제의 맥주’가 되었다.

김 대표의 ‘히트 디자인’은 S맥주 외에도 진흙탕 속 이미지와 마초적 남성에 어필했던 남성맥주 ‘스타우트’를 20~30대 젊은 남성 즉, ‘댄디보이’ 콘셉트로 바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맥주로 재탄생시켜 좋은 호응을 받게 했다.

또 가전제품에서는 삼성전자의 하우젠과 지펠을 리뉴얼해 부드럽고 감성적이며 세련미가 담긴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주부를 위한 보석 같은 가전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실제 보석 이미지를 로고에 담은 게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김 대표의 작품들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철저히 감성으로 풀이한 디자인을 많이 배출한 덕분에 디자인업계에서 ‘호평지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제 감성의 시대입니다. 소비자들이 물성보다는 감성에 더 끌리고 있어요. 따라서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담아내지 못하면 디자인도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그답지 않게 그가 건네준 명함은 흔한 컬러나 화려한 디자인이 없이 단순하고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그는 “우리(디자인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그림자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색깔은 무채색이죠. 고객들의 색깔을 입히는 게 우리 일이잖아요”라고 해명한다. 유채색을 담고 있는 무채색. 이것이 김 대표의 디자인 철학인 듯하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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